짧은감상
담담한 말투로 듣는 이야기다. 성적 인생이라는 작품이 인상적인데, 철학자가 어릴 적부터의 성적 체험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머리가 복잡한 상태에서 읽었는데 조금 차분해지는 느낌이다. 자전적인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나 자신에 대해서도 돌아보고 당시 일본의 밤문화나 기숙사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재미있다.
밑줄
지금은 그것이 단지 첩이어서가 아니라 남들이 미워하는 사채업자의 첩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 어제오늘 '시간'의 톱니에 물려 마모되고 '체념'의 물에 씻겨 색이 바란 '분함'이 다시 선명하고 강렬한 색채로 오다마의 눈앞에 나타났다.
오다마는 이제 어지간히 마음이 가라앉았다. 체념은 그녀가 가장 많이 경험한 심적 반응이었다. 그녀의 정신은 이 방향에서는 윤활유를 바른 엔진처럼 매끄럽게 움직이는 것이 습관처럼 익숙했다. <기러기>
섬에 간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슬픈 일이겠지요. 그 마음은 저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건 이 세상에서 편안히 살았기 때문이겠지요. 교토는 살기 좋은 곳입니다만, 이곳에서 지금까지 제가 겪은 고생은 어디에 가도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자비로운 부교님께서 목숨을 살려주시고 섬으로 가게 해주셨습니다. 섬이 아무리 고생스러운 곳이라 할지라도 귀신이 사는 곳은 아니겠지요. 저는 지금까지 어디 한곳 정착할 곳이 없었는데 이번에 부교님이 섬에 가서 살라고 하셨습니다. 그곳에 정착할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빡빡한 살림이다. 그런데 그것에 만족을 느낀 적이 거의 없다. 평소에는 행복한지 불행한지 생각도 없이 산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이렇게 살다가 갑자기 해고를 당하면 어쩌지, 큰 병이라도 걸리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종종 아내가 친정에서 돈을 가져와 적자를 메우는 것을 알게 되면, 이 걱정이 의식의 표면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다카세부네>
참으로 답답한 정치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옛날 사람의 눈에 법은 어디까지나 법이다. 아이들의 어머니는 단지 그런 법이 있는 마을을 지나게 된 운명을 한탄할 뿐, 법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았다. <산쇼 대부>
그러나 왜 이 논리도 영역을 좀 더 넓혀 모든 인생사가 성욕의 발현이라고 주장하지 않는 것일까? 이런 식이라면 같은 논리로 뭐든지 성욕의 발현이라고 해버리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나는 어떤 예술품이든 자기변호 아닌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인생 자체가 자기변호인 것이다. 모든 생물의 삶이 자기변호이다. 나뭇잎에 앉은 청개구리는 푸른색을 띠고 벽에 앉으면 흙색을 띤다. 풀숲에 출몰하는 도마뱀은 등에 녹색 줄무늬가 있다. 사막에 사는 것은 모래 빛깔을 띤다. 의태는 곧 자기변호이다. 문장이 자기변호인 것도 같은 이치이다. <성적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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