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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완네 쪽으로 / 마르셀 푸르스트 짧은 감상끝도 없이 이어지는 기나긴 수다를 듣고 있는 기분이다. 장황하고 긴 문장은 호흡이 길어서 숨이 차기도 한다. 수많은 말들 속에 이따금씩 드러나는 통찰이 있는데 나의 견문이 짧아서인지 정확한 상관관계를 짐작하기 어렵다. 재미있게도 화자의 끝없는 회상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처음에는 이 책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1권인걸 몰랐다. 그러다가 이야기 중반쯤에 마들렌을 먹고 그 맛과 향에서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는 장면을 보고서야 기시감이 들어 알아냈다. 이 한 구절에 대한 일화는 다른 책에서 본 적이 있는데, 사람의 기억이 어떻게 묻혀 있다가 하나의 자극에 의해 되살아나는지에 대한 예시였다. 하지만 이렇게 길고 장황한 기억일 줄이야. 프랑스인이라서 이렇게 수다스러운가? 솔직히 읽다 보면 매우 잠..
230716 일기 요즘은 책을 안 읽으니 일기만 쌓여간다. 결혼 안하느냐는 직접적인 압박이 심해진다. 하면 하는 것이고 아니면 아닌 것이다, 정도가 결혼에 대한 생각이고 그대로 부모님에게 이야기했다. 실수였다. 한동안 어물쩍 넘어갔더니 안되겠다 싶은지 구체적으로 누구를 만나보라는 이야기가 많아졌다. 빈도가 점점 늘어나는가 보니 나도 혼기를 놓친 수많은 자식들 중 하나가 된 것 같아 감회가 새롭다. 나도 사람인데 낭만적인 연애를 왜 꿈꾸지 않겠는가. 그 이상으로 현실이 차갑고 무거울 뿐이다. 같이 사는 것은 구도의 길이다. 자아를 깎아내서 서로 양립하도록 맞춰내는 것이 고통스럽지 않을 수 없다. 좀 더 어릴 때는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과 바로 그것에 대한 반발감이 끊임없이 충돌하느라 그러잖아도 짧았던 연애가 더 부질없고 하찮..
230709 일기 일주일 쉬었다. 내일은 다시 일이다. 주말 끝무렵엔 항상 그렇지만 오래 쉬다 다시 일하려니 괴로울 뿐이다. 언제쯤 일하지 않을 수 있을지 까마득하다. 그 때 까지 살아 있을지도 잘 모르겠기는 한데...스스로 일해서 먹고 자고 입는 보람은 크지만 밥벌이의 고통을 부정할 수는 없다. 처음 며칠간은 계획한대로 알차게 지냈는데, 그 이후로는 권태와의 싸움이었다. 왜 일할 때는 괴롭고 쉴 때는 심심하단 말인가. 인생의 의미나 이유, 목적 같은 것은 스스로 정할 뿐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삶은 허공에 던져진 물체의 운동처럼 에너지를 잃을 때까지 움직인다. 이런 면에서는 허무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사명감에 가득 차서 인생의 목적을 설정하고 사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 질 때가 있다. 최근에는 과음하는 일이..
230601 일기 먼지 쌓인 기타를 꺼냈다. 얼마만인지 가물가물하다. 소음 걱정 없는 주택으로 이사온 후에 가끔 꽥 소리를 지르곤 하는데, 노래를 부를 때마다 삑사리와 기침으로 마무리된다. 기타는 얼추 혼자 들을 만했다. 방구석에서 조심조심 치던 기타다. 가지고 다니기 편하게 보통 기타보다 반절은 작은 녀석이다. 손가락 굳은살은 없어진지 오래되어 말랑말랑한 손끝이 금새 아려온다. 잔뜩 녹이 슬었을 줄 알았는데, 치고 나서 한번씩 닦아서인지 상태가 나쁘지 않다. 튜닝도 크게 틀어지지는 않았다. 기억이란 머릿속에만 있는 것은 아닌듯, 몇 개 즐겨 치던 곡들이 엉성하게나마 풀려나온다. 신경을 기울여 다음 운지를 떠올리려고 노력하면 머릿속이 텅 비고 손가락이 멈추는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보면 별 생각 없이 손가락이 움직인다. ..
230530 일기 휴일은 길고도 짧다. 별로 한 건 없는 듯한데 3일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대체로 무기력한 휴일이었다. 이렇게 의욕 없이 지내는 게 드문 일은 아니다. 삶의 의미랄 것들을 찾는 것도 아니고, 긴 호흡의 목적이 있지 않다. 즐거움을 추구하기보다는 고통을 피하려고 한다. 인생은 공허하고 허무하고 고단하다. 내던져진 돌멩이와 같다. 내던져진 돌멩이는 얼마간 관성에 따라 운동하다가 다른 물체에 충돌하든지 서서히 중력에 이끌려 낙하할 것이다. 어떻게든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과정은 논리와 이성으로 파악하기가 어렵다. 스스로 결정하고 입지를 세우는 수도 있겠다. 사실은 그것밖에는 없을 수도 있다. 예전처럼 병적으로 불안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간신히 습관의 탈을 둘러쓰고 사회생활을 이어가던 시간은 잊을..
230522 일기 헛헛하다. 일은 많은데 손에 잡히질 않아 내일로 미뤄놓는다. 내일의 나는 지금의 나를 원망하겠지. 이렇게 의욕이 나지 않는 때가 있다. 즐거움이 흩어지고 고통이 희미해지면 권태가 차오른다. 공허함에 몸서리친다. 환부를 모르는 가려움처럼 긁어도 시원해지지 않는다. 인생, 두 글자가 탄식처럼 튀어나온다. 습관처럼 한숨이 몰아친다. 머릿속에 뭔가 막혀 있는 듯이 답답하다. 무언가 토해내고 싶은 형체가 두루뭉실하고 흐리멍덩하게 떠오르는데 나의 언어가 가닥을 잡지 못한다. 뭐든지 써내려가고는 있지만 깜빡이는 글자들이 낯설기만 하다. 이런 몸부림은 내 일기장에 무수하다. 지나고 나서 읽어보면 이게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다. 무언가 품고 있었을 테지만, 지금 와서는 짐작만 할 뿐이다. 이 순간도 흩어지고 마모되어..
230409 일기 3주동안 출장이었다. 4주 계획이었지만 힘들기도 하고 더 있어 봤자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아 일찍 돌아왔다. 여전히 주말은 쏜살같이 지나간다. 일요일 밤은 우울하다. 스스로 벌어서 먹고 사는 것은 마음에 들지만 그 고단함은 다른 문제다. 밥벌이란 어찌 이리 지난한가.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았던 흐린 날씨도 이제는 크게 감흥이 없다. 이 쪽으로 이사 온지 2년 정도 되었는데 이제야 익숙해지는가 싶다. 월세 내는 것도 아니고 집이 있어서 그런걸까 싶기도 하다. 새삼 도시 속에서 은둔하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출장가서 예전 동료라던가 친구라던가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집으로 오니 만날 사람도 없고 만나고 싶지도 않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한다. 친구가 없이 지내는 것에 경각심이 드는 걸 보..
주홍글씨 / 나다니엘 호손 짧은 감상 잘못을 저지르고 그 댓가를 치르는 사람, 잘못을 저질렀으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지내는 사람, 잘못을 용서하지 못하고 복수를 꾀하는 사람이 있다. 마음 깊이 죄의식이나 증오를 감추고 살아가는 목사나 의사를 보면 피로하기 그지없다. 흠 없이 결백하고 순수하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 같은 세상에서 흔들림 없이 살 수는 없다. 인간에게 양심이 있다고 믿는다면 진실의 가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하다고 느낀다면 진이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죄 많은 인간임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용기가 평온함을 가져오지 않은가. 밑줄 그리고 그녀를 정죄한 무쇠 같은 팔에는 멸하는 힘도 받들어 주는 힘도 있는 엄격한 모습의 거인인 법률 자체가 그녀가 말할 수 없는 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