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73) 썸네일형 리스트형 스완네 쪽으로 / 마르셀 푸르스트 짧은 감상끝도 없이 이어지는 기나긴 수다를 듣고 있는 기분이다. 장황하고 긴 문장은 호흡이 길어서 숨이 차기도 한다. 수많은 말들 속에 이따금씩 드러나는 통찰이 있는데 나의 견문이 짧아서인지 정확한 상관관계를 짐작하기 어렵다. 재미있게도 화자의 끝없는 회상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처음에는 이 책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1권인걸 몰랐다. 그러다가 이야기 중반쯤에 마들렌을 먹고 그 맛과 향에서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는 장면을 보고서야 기시감이 들어 알아냈다. 이 한 구절에 대한 일화는 다른 책에서 본 적이 있는데, 사람의 기억이 어떻게 묻혀 있다가 하나의 자극에 의해 되살아나는지에 대한 예시였다. 하지만 이렇게 길고 장황한 기억일 줄이야. 프랑스인이라서 이렇게 수다스러운가? 솔직히 읽다 보면 매우 잠.. 230709 일기 일주일 쉬었다. 내일은 다시 일이다. 주말 끝무렵엔 항상 그렇지만 오래 쉬다 다시 일하려니 괴로울 뿐이다. 언제쯤 일하지 않을 수 있을지 까마득하다. 그 때 까지 살아 있을지도 잘 모르겠기는 한데...스스로 일해서 먹고 자고 입는 보람은 크지만 밥벌이의 고통을 부정할 수는 없다. 처음 며칠간은 계획한대로 알차게 지냈는데, 그 이후로는 권태와의 싸움이었다. 왜 일할 때는 괴롭고 쉴 때는 심심하단 말인가. 인생의 의미나 이유, 목적 같은 것은 스스로 정할 뿐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삶은 허공에 던져진 물체의 운동처럼 에너지를 잃을 때까지 움직인다. 이런 면에서는 허무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사명감에 가득 차서 인생의 목적을 설정하고 사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 질 때가 있다. 최근에는 과음하는 일이.. 주홍글씨 / 나다니엘 호손 짧은 감상 잘못을 저지르고 그 댓가를 치르는 사람, 잘못을 저질렀으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지내는 사람, 잘못을 용서하지 못하고 복수를 꾀하는 사람이 있다. 마음 깊이 죄의식이나 증오를 감추고 살아가는 목사나 의사를 보면 피로하기 그지없다. 흠 없이 결백하고 순수하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 같은 세상에서 흔들림 없이 살 수는 없다. 인간에게 양심이 있다고 믿는다면 진실의 가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하다고 느낀다면 진이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죄 많은 인간임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용기가 평온함을 가져오지 않은가. 밑줄 그리고 그녀를 정죄한 무쇠 같은 팔에는 멸하는 힘도 받들어 주는 힘도 있는 엄격한 모습의 거인인 법률 자체가 그녀가 말할 수 없는 치.. 230211 일기 불행은 행복의 부재를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다면 불행하다고 할 수 있다. 국어사전적인 정의로는 생활에서 기쁨과 만족을 느끼어 흐뭇한 상태가 행복이라는데, 나는 대부분의 시간에 불행한 셈이다. 대체로 만족하는 편이긴 하지만 기쁘다거나 흐뭇한 때는 드물다. 괴로움과 고통이 있을 때도 있지만, 그 때는 불행이 깊어지는 셈이다. 평상시의 불행은 흔들림 없는 감정에 가깝다. 그러고 보면 행복과 불행이라기보다는 괴로움, 평정, 기쁨 정도로 나누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불행을 지우는 행복이 있을까? 괴로움을 지우는 기쁨이 있을까? 근래에는 꽤나 단조롭게 생활하고 있었다. 그렇게 힘들지도 않고 기쁘지도 않고, 할 일을 할 뿐이었다. 며칠 전에 간만에 감정적인 소모로 진이 빠졌다. 예전만큼 속에 가시.. 230205 일기 일요일 밤에는 생각이 많아진다. 주말동안 쉬다가 이제 다시 일하러 가야 한다는 생각에 싱숭생숭하다. 일하고 난 이후로 삶의 단위가 일주일이 되었다. 주말만 바라보고 주중을 버틴다. 바로 그 직장 또한 뒤숭숭하다. 기록적인 매출이라고 자축하던 게 눈에 선한데 난데없이 구조조정이다. 우리 팀에서도 한명이 잘렸다. 나라 전체로 보면 실업률이 몇십년새 최저치를 찍었다는 게 아이러니 그 자체다. 통계는 통계일 뿐이다. 나의 생활은 여전하다. 한없이 은둔에 가까운 생활이다. 결혼에 대한 부모님의 압박이 최근에는 더 노골적이다. 결혼 생각이 없지는 않지만 결국에 혼자 살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만 하고 있다. 나는 누구와 같이 살 수 없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두려움도 있다. 인생은 고단하고 외롭다. 함.. 230113 메모 멜랑콜리한 아침이다. 옛 기억들이 묵고 묵어 악취가 새어나온다. 장독에 가득찬 장 냄새다. 고통과 창피, 모욕과 고독이 뒤섞인 가운데 밑도 끝도 없는 그리움이 모순적이다. 간만에 옛 친구들을 만나서인가, 새삼 지금의 생활을 다시 살펴본다. 이대로 괜찮은 건가, 의문이 든다. 묻어 두었던 불안이 고개를 든다. 230108 일기 - 귀가 부모님 댁을 나서서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24시간 정도. 버스와 비행기, 택시를 번갈아 탔다. 역병이 창궐한 지 3년만의 방문이었다. 매년 갈 때는 그리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해외여행을 온 듯한 낯설음이 당황스러웠다. 그러잖아도 빠르게 변화하는 한국의 도시들이라 더 그렇게 느껴질지 모른다. 더욱이 이번에는 미루고 미루던 시민권을 따고, 한국 국적은 포기해서 그럴지 모른다. 이제 핸드폰도 못 만들고 은행 계좌도 못 만든다. 새삼 국적상실의 무게감이 느껴졌다. 여지껏 한 발은 한국에 걸치고 있다는 느낌으로 국적을 유지했었는데 그마저도 사라졌다. 간만에 만난 친지들과는 할 말이 많았다. 그대로 잘 지내는 사람들도 있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뒤바뀐 상황을 헤쳐나가는 사람들도 있다. 부모님의 은근.. 221204 일기 진눈깨비가 내렸다. 섭씨 0도에 가까운 영상의 기온에 눈은 땅에 닿고 녹았다. 시내로 운전하다 보니 산 쪽에는 눈이 하얗게 쌓여 있다. 라흐마니노프를 듣기에는 좋은 날씨다. 서양 고전음악을 그렇게 즐겨 듣지는 않지만, 몇 가지 좋아하는 곡은 있다. 그 중에 꼭 직접 들어보고 싶은 곡들이 있는데 마침 공연이 있어서 예매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이다. 꽤나 유명한 곡이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평소에 그렇게 공연 스케줄 따위를 챙겨 보지는 않아서 아직까지 직접 들어볼 일이 없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코로나 덕에 공연은 꿈도 꿀 수 없었으니 더욱더 그렇다. 클래식 좋아하는 친구는 너무 '끈적'하고 감정 과잉이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나는 바로 그것 때문에 좋아한다... 이전 1 2 3 4 ···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