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감상
시간여행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다. 최근의 시간여행이라고 하면 보통 한 사람의 입장에서 가까운 과거나 미래를 조작하는 방식이 많아 좀 더 개인적인 차원에서 시간여행을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타임머신에서 웰즈가 묘사하는 미래 인간사회는 섬뜩하기까지 하다. 계급사회의 끝이 결국에는 인간 종의 분화로 이어지는 것, 무력하고 순수(?)한 엘로이들과 관습적으로 지배계급에 필요한 물자를 제공하면서 동시에 그들을 잡아먹는 몰록의 대비가 19세기 당시의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보여준다. 형태는 SF소설이지만 내용을 보면 사회비판이나 풍자에 가깝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비참한 죽음을 맞았을 위나가 끝까지 마음에 걸린다. 묘사가 워낙에 귀여운 어린애처럼 해놓기도 했고 두루뭉실하게 죽었을 것이다, 라고만 묘사되니 더 상상력이 발휘될 수 밖에 없다.
밑줄
빠른 속도로 시간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거의 문제될 게 없다. 말하자면, 내 몸이 희석되어 가로막고 선 물체의 빈틈 속으로 수증기처럼 빠져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타임머신을 멈추면 내 몸의 분자는 타임머신이 차지하는 공간을 타임머신보다 앞서 차지한 물체의 분자와 충돌을 일으키고 말 것이다.
우리는 고통과 궁핍의 숫돌에 끊임없이 갈린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증오의 대상인 그런 숫돌은 결국 부서지고 만 듯했다!
그리하여 결국엔 지상에서는 유산계급이 쾌락과 안락과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지하에서는 무산계급인 노동자들이 노동 환경에 계속해서 순응해가게 된 것이다.
별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내 걱정거리와 지상에서의 삶의 모든 중요한 문제가 갑자기 하찮게 느껴진다. 나는 헤아릴 수 없을만큼 먼 거리와 미지의 과거로부터 미래로 천천히 움직여가는 별들의 필연적 운동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지구의 극이 그리는 거대한 세차 운동의 주기도 생각해보았다. 내가 시간 여행을 하는 세월 동안 이 조용한 회전 운동은 겨우 40회밖에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적은 횟수의 회전 운동을 하는 사이에 모든 인간의 활동과 전통, 복잡한 조직, 국가, 언어, 문학, 열망, 그리고 심지어 내가 아는 인류에 대한 기억마저 완전히 사라지고 만 것이다. 그 대신 자신들의 고귀한 조상에 대한 기억을 잊어버린 저 허약한 존재들과 소름 끼치는 하얀 괴물들만이 있을 뿐이다.
엘로이들은 그저 살찐 소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개미 같은 몰록들의 식량, 먹잇감일 따름이었다. 아마 몰록들은 엘로이들을 번식시키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위나는 지금 내 곁에서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다재다능한 지적인 능력은 변화와 위험과 어려움을 겪으면서 얻게 되는 보상인 것이 자연의 법칙인데, 우리는 그것을 간과하곤 한다.
변화나 변화의 필요성이 없는 곳에서는 지적 능력이 존재할 수 없다.
내 생각에 이처럼 지상 세계의 인간들은 서서히 연약하지만 아름다운 존재로 변모해갔고 지하 세계는 단순히 기계적인 산업 공간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내 옆에는 기이한 하얀 꽃 두 송이가 놓여 있는데, 그것이 나를 위로해준다. 그 꽃은 이미 시들어 갈색으로 변하고 축 처져 부서질 것만 같지만 바로 이것이야말로 인류의 지성과 힘이 사라져도 감사하고 서로 사랑하는 마음은 인류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임을 증명해주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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