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감상
한 사람의 어린시절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그리고 독립하고 가정을 이루기까지, 흥미진진한 여정이었다. 무엇보다도 제인 에어의 강인한 정신이 인상깊다.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다양한 역경과 고통을 마주할 때 흔들리며 번민하는 모습들 또한 나 자신의 생각과 대응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단순히 불행한 고아 소녀가 신데렐라가 되어 행복하게 살았다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름다운 여자의 벼락출세도 아니다. 오히려 제인 에어는 못생겼다고 하는 묘사가 더 많다. 그러나 제인 에어라는 인물이 빛나는 점은 외모가 아니다. 스스로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스스로 원칙을 가지고 있어서 자신의 나약함을 이겨내려는 의지가 있다. 무엇보다도 자기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고 침묵하기 거부한다. 강렬한 자아를 가지고 스스로를 표현하는 정신의 아름다움이다.
긴 드라마를 끝낸 기분이다. 세세하게 묘사되는 감정들과 사색들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고, 부분부분에서는 묘사되는 감정적인 격동이 너무 생생해서 나 또한 침체된 기분으로 책을 잠시 덮기도 했다. 스스로 결정한 대로 로체스터에게서 떠나는 장면에서 감탄하고 동시에 대책 없이 떠나 갖은 고생을 하는 모습에 잠을 잊고 빠져들었다. 다양한 측면에서 예상치 못한 생각Idea들이 튀어나와 나를 놀라게 한다. 책을 읽으면서도 오히려 스스로 여러가지로 상념에 잠기게 한다. 즐거운 경험이었다.
밑줄
그 방에 있으면 좀 슬프긴 했지만 비참하지는 않았다. 진실을 말하자면, 사실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그들 틈에 끼면 누구도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타다 남은 난롯불이 칙칙한 붉은색으로 짜부라지면 나는 황급히 옷을 벗고 내 작은 침대 속으로 들어가서 침대보 매듭과 장식 끈을 잔뜩 잡아당겨 침대 속을 추위와 어둠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은신처로 삼곤 했다. 나는 늘 침대 속으로 인형을 데리고 들어갔다. 인간은 본래 누군가를 사랑해야만 하는 존재다. 그런 사랑을 베풀 만한 더 가치 있는 대상이 없던 나로서는 작은 허수아비처럼 색이 바래고 남루해진 조각 인형을 그저 사랑하고 아끼는 데서 즐거움을 찾으려고 애쓸 뿐이었다. 이제 와서 내가 얼마나 바보스러울 정도로 진지하게 그 인형에 빠졌었는지 회상하면 기분이 얼떨떨해진다. 그때 나는 인형이 살아 있고 사물을 감지할 수 있는 것으로 상상했다. 나는 내 잠옷으로 인형을 포근히 안지 않으면 잠도 잘 수 없었다. 인형이 내 잠옷 안에 편안하고 따뜻하게 누워 있으면 나는 비교적 행복했다. 인형도 나처럼 행복하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반 시간도 안 되는 침묵과 반성 끝에 나는 내 행동이 얼마나 미친 짓이었으며, 누군가를 미워하며 동시에 미움을 받는 내 처지가 얼마나 쓸쓸한가를 깨달았다.
나는 난생처음으로 복수의 맛을 어느 정도 맛본 것이었다. 향기가 좋은 포도주가 그렇듯 그것은 처음 삼킬 때 훈훈하고 풍미가 넘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금속성이면서 부식하는 듯한 그 뒷맛은 독극물을 삼킨 것 같은 느낌을 안겨주었다.
인생은 심지어 나 같은 것에게도 비춰줄 햇살이 있었다.
네게 착하게 대해주는 사람들에게는 너도 착하게 군다는 말이군. 그건 나도 늘 바라는 바야. 잔인하고 부당한 사람들에게서 우리가 늘 친절하고 순종한다면, 그 악한 자들은 자기들 멋대로 행동할 거야. 그들은 절대 무서운 줄 모를 거야. 그래서 전혀 변하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악해질 거야. 이유 없이 우리를 때리면 우리는 아주 세게 주먹을 돌려줘야 해.
아무도 비위를 맞춰주려고 노력해도 계속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내 쪽에서도 싫어해야 한다고......부당하게 나를 벌하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반항할 거야. 그건 내게 애정을 나타내는 사람들을 내가 사랑해야 하는 것이나, 받아 마땅한 벌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일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야.
인간의 본성이란 그처럼 불완전한 것 아닌가! 가장 깨끗한 혹성의 원형 표면 위에도 그런 얼룩이 있는 법이다. 그런데 스캐처드 선생님 같은 사람의 눈은 그저 그런 사소한 결점들만 볼 수 있을 뿐, 밝게 빛나는 둥근 천체의 완전한 모습은 보지 못한다.
온통 궁핍으로 둘러싸인 로우드 학교지만, 나는 이곳을 게이츠헤드와 그 매일같이 넘치는 사치스러운 생활과는 절대로 바꾸지 않을 것이다.
"제인, 난 행복해. 그러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들어도 꿋꿋해야 해. 그리고 슬퍼하지 마. 슬퍼할 일이 없으니까.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죽어. 게다가 나를 데려가는 그 병도 고통스럽지 않아. 아주 점잖고 서서히 진행되는 병이야. 내 마음이 편안해. 내 죽음을 슬퍼해줄 사람도 없어. 아빠만 있어. 하지만 최근에 결혼하셔서 나를 그리워하지도 않을 거야. 어린 나이에 죽으니 난 커다란 고통들을 피할 수 있을 거야. 나한테는 세상에 나가 크게 성공할 자질도 없고 재능도 없어. 그동안 난 계속 실수만 하고 살았을 거야."
나는 편지나 전갈을 통해 바깥세상과 소통한 적이 없었다. 그저 학교의 규칙, 학교의 의무, 학교의 관례와 생각, 학교에 관련된 목소리와 얼굴, 어휘 복장, 학교가 좋아하는 일과 싫어하는 일, 그런 것들이 내가 삶에 대해 아는 전부였다. 그런데 그런 내가 이제 그런 것들로는 불충분하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8년의 판에 박힌 생활이 단 하루 오후 시간에 싫증이 난 것이다. 나는 자유를 갈망했다. 자유를 갈망하며 나는 가쁜 숨을 내쉬었다.
'내가 원하는 게 뭐지? 새로운 집에서, 새로운 얼굴 사이에서, 새로운 환경에서 일하는 새로운 자리야. 그런 곳을 원하는 것은 더 나은 것을 원해 봤자 소용이 없기 때문이야. 새로운 일자리를 찾으려면 사람들은 어떻게들 하지? 아마 친구들에게 문의해보겠지. 그런데 난 친구가 없어. 친구 없는 사람도 많아.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 알아보고 스스로 조력자가 되겠지. 그럴 때 그들이 의지하는 방편이 무엇일까?'
세상 경험이 전혀 없는 젊은 여자가 그처럼 완벽하게 홀로 있게 되었다는 느낌, 모든 연고와 단절되어 표류하면서 목적지로 삼은 항구에 도달할 수 있는지 어쩐지도 모르고, 게다가 수많은 장애물 때문에 떠났던 출발지로 되돌아갈 수도 없다는 느낌은 참으로 이상한 느낌이었다. 모험의 매력이 그런 기분을 완화시키고 불타는 자존심이 그 감정을 녹여주긴 했지만 공포심의 박동이 그 감정을 교란시켰다. 또한 반 시간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나 혼자 있게 되자 내가 느끼는 두려움은 나를 완전히 압도했다.
밝은 파란색 무명으로 된 커튼 틈새로 햇살이 빛을 가지고 들어오자 내 방은 매우 밝은 아늑한 장소로 보였다. 그 햇살에 벽지를 바른 사면의 벽들과 카펫을 깐 방바닥이 보였다. 로우드 학교의 회반죽만 칠한 벽이나 널빤지 바닥과는 너무나 달라서, 그 모습을 보는 순간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었다. 겉으로 나타난 외양이 젊은이들에게는 큰 영향을 미치는 법이다.
나는 내가 가진 경험보다 더 실질적인 경험을 갈망했다. 여기서 내가 접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나와 비슷한 인간들과의 교제, 그리고 다양한 성격을 가진 인간들과의 더 많은 친교를 갈망했다. 물론 나는 페어팩스 부인의 좋은 점과 아델의 좋은 점을 값진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나는 그들과는 다른 더욱 생동하는 선량함이 존재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믿고 있는 것들을 직접 눈으로 보기를 바랐다.
인간이 평온한 삶에 만족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인간은 활동을 해야 한다. 그런 활동을 찾을 수 없으면 만들어내려한다. 몇백만 명의 인간들이 내 운명보다 더 정적인 운명에 처해 있다. 또한 몇백만 명의 인간들이 자신들의 운명에 대해 무언의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 정치적 반란 외에도 얼마나 많은 반란이 지구를 머리로 채우고 있는 수많은 인간들의 삶 속에서 발효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대체로 여자들은 매우 온건한 존재들로 간주된다. 그러나 여자들도 남자들이 느끼는 것과 똑같이 느낀다. 여자들도 자기 능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남자 형제들처럼 자신들의 노력을 쏟을 분야가 필요하다. 그들도 남자들이 고통받는 것 못지않게 가혹한 제약과 절대적인 침체 속에서 고통을 받는다. 그러나 동료 인간으로서 여자들보다 훨씬 더 많은 특권을 누리고 있는 남성들이 여자는 그저 집구석에 틀어박혀 푸딩이나 만들고, 스타킹이나 짜고, 피아노나 연주하고, 가방에 자수나 놓으라고 말한다면 그건 편협한 일인 것이다. 그러니까 여자들이 관습이 여자들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선언한 것 이상의 것을 행하고 배우려고 나설 때, 그들을 비난하거나 비웃는 것은 지각없는 일인 것이다.
나는 토시를 집어 들고 걸어갔다. 이 사건은 내게 우연히 일어났다가 끝난 사건이었다. 중요하지도 않고 낭만도 없고 어느 의미에서 재미도 없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한 시간 정도이지만 단조로운 내 삶에 변화라는 표시를 찍는 일이었다. 내 도움이 필요했고 도움을 요청받았던 것이다. 내가 그 도움을 준 것이다. 내가 무언가를 해냈다는 생각에 내 마음이 뿌듯했다. 비록 하찮고 일시적인 일이었지만 그것은 능동적인 행동이었다. 나는 전적으로 수동적인 삶에 진력이 나 있었다.
"에어 선생, 질투를 느껴본 적이 없지요? 물론 없을 거요. 물어볼 필요도 없지. 사랑을 느껴본 적이 없을 테니까. 앞으로 그 두 가지 감정을 느끼게 될 거요. 선생의 영혼은 잠자고 있는 것요. 그 영혼을 깨울 충격이 앞으로 주어질 거요. 선생의 어린 시절이 이제까지 미끄러지듯 타고 온 그 평온한 흐름 속에서 모든 인간의 삶도 그와 같이 평온하게 흘러가는 것이라고 선생은 생각하겠지요. 눈을 감고 귀를 막은 채 떠가고 있기 때문에 선생은 그리 멀지 않은 밀물 바닥에 삐쭉삐쭉 솟은 암초들을 보지 못하고 그 밑에서 거친 파도가 끓고 있는 것을 듣지도 못하는 거요. 그러나 내 분명히 말해두겠소......내 말을 명심하시오...... 언젠가 선생도 암초로 가득 찬 해협 어귀에 다다를 것이오. 그곳에 이르면 인생이라는 강물 전체가 흐름을 정지하고 소용돌이와 혼란 상태, 거품과 소음으로 바뀔 것이오. 그러면 선생은 암초 꼭대기에서 원자 부스러기로 부서지거나 아니면 어떤 거대한 파도에 의해 위로 들어 올려져 실려 가서 보다 잔잔한 흐름 속으로 들어가게 될 거요...... 지금의 나처럼 말이오."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거기에 담긴 생각과 감정을 자세히 검토해보았다. 그리고 경계도 길도 없는 상상의 황무지를 길을 잃고 돌아다니는 그러한 생각과 감정을 엄한 손길로 다스려 상식이라는 안전한 우리 속으로 다시 몰아넣으려고 노력했다.
"아름다움이란 바라보는 이의 눈 속에 있다"는 말은 그야말로 진리이다.
이것들은 통상적 관례에 따르면 아름답지 않았지만 나에게는 아름다움 이상의 아름다움이었다. 그것들은 어떤 관심거리, 즉 나를 완전히 지배하고, 내 감정을 내 제어 능력에서 빼앗아 자기 능력의 족쇄를 채워버리는 그런 영향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그를 사랑할 의도를 품어본 적이 없었다. 내 영혼 안에서 탐지된 사랑의 싹을 제거하려고 내가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가는 독자 여러분도 알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를 다시 보게 되자 그 사랑의 싹은 자발적으로 푸르고 힘차게 되살아났다. 그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으면서 나로 하여금 자기를 사랑하게 만든 것이다.
심지어 그런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동안 내 속에 치밀었던 감정이 지금 이 순간까지도 기억 속에서 생생히 되살아나고 있다.
장차 그녀의 신랑감인 로체스터 씨 자신이 의중에 두고 있던 이 미래의 약혼자를 끊임없이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이러한 명민함과 용의주도, 자신이 선택한 여성의 결점에 대한 완벽하고 명확한 인식, 그녀를 향한 그의 감정에 사랑의 열정이 분명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 등으로 끊임없이 나를 고문하는 고통이 살아났다. 나는 그가 가문을 위해서, 그리고 정치적인 이류에서 그녀와 결혼하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의 신분과 인척 관계가 그에게 적합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그가 그녀에게 자기의 사랑을 주지 않는다고 느꼈고 그녀의 자질이 그 보물을 얻기에는 너무 모자란다고 느꼈다. 이것이 문제였다......이것이 바로 내 신경을 건드리고 괴롭히는 문제였다...... 이것 때문에 내 열정이 지속되고 키워지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를 매혹할 수 없는 여자였다.
로체스터 씨를 매혹하려는 잉그램 양의 시도를 지켜보는 것, 그런 시도가 반복해서 실패하는 모습을 목격하는 것, 그녀 자신은 시도가 실패했다는 것을 알지도 못하는 것, 그녀가 화살을 날릴 때마다 그것이 과녁에 명중했다고 헛되이 상상하며 무엇에 홀린 듯 성공을 과시하는 모습을 목격하는 것, 실은 그럴 때마다 그녀의 그런 자만심과 자기만족이 매혹하려 했던 상대방을 오히려 점점 더 멀어지게 하고 있는 것, 이런 모든 광경을 지켜보는 것은 끝없는 자극을 받는 것이며 동시에 무자비한 감금을 당하는 일이었다.
캄캄하고 안개가 끼어 있었고 으스스한 1월 어느 아침, 나는 절망과 비통한 심정으로......추방당한 심정과 거의 벌을 받고 유형에 처해진 심정으로...... 로우드 학교라는 떨리는 피난처를 찾아 저 적개심으로 가득 찬 지붕 밑을 떠났었다. 멀고 먼 미답의 목적지 로우드 학교를 찾아갔었다. 바로 그 적개심이 감도는 저택 지붕이 다시 내 눈앞에 솟아 있었다. 그때처럼 내 앞날은 여전히 불투명했다. 내 마음 또한 아직 여전히 아팠다. 나는 아직도 이 지구 표면을 배회하는 방랑자라고 느껴졌다. 그러나 나는 내 자신과 능력에 대한 보다 확고한 신뢰를 체험했고 압제 앞에 두려워 위축되는 그러한 체질은 많이 개선된 상태였다. 부당한 대우를 받아 크게 벌어졌던 상처도 다 아물고, 분노의 불꽃도 사그라져 있었다.
생명이 없는 물체들은 아무런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살아 있는 것들은 알아볼 수 없게 변해 있었다.
몇몇 인간들은 진실되고 관대한 감정이란 것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감정이 결여된 탓에 하나는 참을 수 없이 독살스러운 본성을 가지고 있고 또 하나는 경멸이나 받을 만큼 무미건조한 본성을 갖게 된 두 인간이 여기 내 앞에 있었다. 판단력이 없는 감정은 실로 물을 탄 물약이다. 감정이 없는 판단력 또한 사람이 삼키기에는 너무나 쓰고 껄끄러운 음식 조각이다.
'난 내 스스로를 보살필 거야. 더 외로울수록, 친구가 없으면 없을수록, 떠받쳐주는 사람이 없을수록 나는 더 나 자신을 존중할 거야. 하느님이 내려주시고 인간이 승인한 법을 지킬 테야. 제정신이어서 미치지 않았을 때 내가 받아들인 원칙을 지킬 거야. 지금 그런 것처럼. 법과 원칙은 본래 유혹이 존재하지 않는 시간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야. 그것들은 지금 같은 시간, 즉 몸과 영혼이 법과 원칙을 향하여 너무 엄격하다고 반란을 일으켰을 때를 위해 존재하는 거야. 그것은 엄정하고 감히 침범할 수 없는 것이어야 해. 내 개인적 편의를 위해 법과 원칙을 위반할 수 있다면 그것들이 무슨 가치가 있겠어? 그것들은 가치가 있어......나는 항상 그렇게 믿어왔어. 내가 지금 그것을 믿을 수 없다면 그건 내가 미쳤기 때문이야. 완전히 미쳤기 때문일 거야. 미친 상태란 혈관에 불이 당겨지고 심장은 맥박을 셀 수 없을 정도로 빨리 뛰는 상태를 말해. 그러니까 지금 내가 이 순간에 지켜야 할 것은 이미 다짐해놓은 기존의 생각과 이미 기정사실화된 결심뿐이야. 나는 거기에 발을 들여놓았어.'
계단을 돌아 내려올 때의 내 심정은 적막했다. 나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계적으로 진행했다.
과거는 천국처럼 달콤하면서 죽음처럼 슬픈 페이지였다. 그걸 한 줄만 읽어도 내 용기는 녹아 없어지고 내 정력은 파괴되고 말 것이다. 미래는 흉흉한 공백이었다. 대홍수가 쓸고 간 뒤의 세상 같은 어떤 것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아직 생각하는 기능을 찾지 못했었다. 다만 귀를 기울이고 경계하고 겁에 떨기만 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내가 떠나는 잠자리를 돌아다보았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나는 다만 이렇게 소망했다. 즉 밤새 내가 자는 동안 나의 창조주께서 나에게 내 영혼을 내놓으라고 요구하셨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었다. 내 나약한 몸이 죽음에 의해 운명과 싸우는 일을 면제받아 지금 조용히 썩어가고만 있다면 좋았을 텐데...... 그래서 이 황야의 흙과 평화롭게 뒤섞이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직 모든 욕구와 고통과 책임과 함께 생명을 나는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그 짐을 짊어지고 가야 했고 욕구는 충족시켜야 했고 고통을 참아내고 책임은 완수해야 했다.
잘 알려져 있듯이 편견이란 것은 가슴에 박혀 있게 되면 거기서 뽑아내기가 무척 어려운 것이다. 왜냐하면 가슴이란 토양은 교육에 의해 부드러워지거나 비옥해지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편견은 가슴속에서는 마치 돌밭 사이에서 자라는 잡초처럼 질긴 것이다.
자신으로서는 접근도 하기 어려운 것으로 생각했던 화제가 이렇게 나를 통해 이야기되고 그처럼 자유롭게 다루어지는 것을 듣는 일은 새로운 즐거움이며 기대도 하지 못한 위안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내성적인 사람들은 종종 활달한 사람들보다 더 자신의 감정과 슬픔이 솔직하게 토론의 대상이 되는 것을 필요로 한다. 아무리 엄격한 금욕주의자라 하더라도 결국엔 인간인 것이다. 그래서 선의를 가지고 '침묵의 바다'와 같은 그들의 영혼 속으로 과감하게 '난입해' 들어가는 것이 종종 그들에게 최고의 은혜를 베푸는 일이 되는 경우가 많다.
갑자기 막대한 재산을 갖게 되었다는 행운의 소식을 들으면 벌떡 일어나거나 뛰어오르거나 만세! 하고 외칠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 책임을 깊이 생각하거나 할 일을 숙고하기 시작하는 법이다. 그리고 한결같은 만족감을 바탕으로 어떤 심각한 근심 걱정이 피어나는 법이다. 그리고 우리는 감정을 억누르고, 이마에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그 축복을 깊이 사색하게 된다.
나는 영감이라도 받은 듯 올리버 양에 대한 그의 사랑의 성격을 이해했다. 나는 그 사랑이 그저 감각적인 사랑일 뿐이라는 그의 생각에 동의했다. 나는 그 사랑이 그에게 행사하는 격정을 유발하는 힘 때문에 그가 자신을 얼마나 경멸했는지, 그가 그 사랑을 억누르고 지워버리기를 얼마나 간절히 원했는지, 또한 그 사랑이 그의 행복이나 그녀의 행복으로 영구히 이끌어갈 것이라는 믿음이 추호도 없다는 것을 이해했다.
나는 지금까지는 은연중에 세인트 존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나는 무서워하면서 그를 대했다. 그건 그가 나를 알쏭달쏭한 상태에 머물도록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그가 어느 정도까지 성인군자이고 어느 정도까지가 평범한 인간인가를 구별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 대화 속에서 무언가 실체가 드러나는 것이었다. 내 눈앞에서 그의 본성에 대한 분석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의 결점이 보였다. 나는 그 결점을 이해했다. 그곳 히스 둔덕 위에 앉아 있는, 내 앞의 잘생긴 남자도 나처럼 오류를 범할 수 있는 나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바로 그런 인간의 발치에 앉아 있었다.엄격하고 전제적인 그의 모습에서 베일이 벗겨져나갔다. 이런 특질이 있다는 것이 감지되자 그의 불완전성도 감지되었다. 내게 용기가 솟아올랐다. 결국 나는 나와 동등한 사람과 같이 있는 것이었다. 논쟁을 할 수 있고,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면 저항할 수도 있는 상대였다.
내게는 여전히 내가 의지할 말라죽지 않은 자아가 있었다. 고독의 순간에도 이야기를 나눌 타고난 감정들, 노예처럼 예속되지 않는 내 감정들이 있었다. 내 마음속에는 오로지 나 혼자만 누릴 수 있을 뿐 그가 결코 들어오지 않은 후미진 구석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 구석에서 싱싱하고 아늑하게 자라나는 감정들은 그의 엄숙한 태도가 말려 죽이지 못할 것이고 그의 질서정연한 투사 같은 발걸음이 짓밟지 못할 것이다.
유쾌한 의식! 이 홀가분한 의식이 내 모든 본성을 살아나게 했고 빛을 발하게 했다. 그가 곁에 있어서 나는 완전히 살아난 것이었고, 내가 곁에 있어서 그도 살아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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