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은 행복의 부재를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다면 불행하다고 할 수 있다. 국어사전적인 정의로는 생활에서 기쁨과 만족을 느끼어 흐뭇한 상태가 행복이라는데, 나는 대부분의 시간에 불행한 셈이다. 대체로 만족하는 편이긴 하지만 기쁘다거나 흐뭇한 때는 드물다. 괴로움과 고통이 있을 때도 있지만, 그 때는 불행이 깊어지는 셈이다. 평상시의 불행은 흔들림 없는 감정에 가깝다. 그러고 보면 행복과 불행이라기보다는 괴로움, 평정, 기쁨 정도로 나누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불행을 지우는 행복이 있을까? 괴로움을 지우는 기쁨이 있을까? 근래에는 꽤나 단조롭게 생활하고 있었다. 그렇게 힘들지도 않고 기쁘지도 않고, 할 일을 할 뿐이었다. 며칠 전에 간만에 감정적인 소모로 진이 빠졌다. 예전만큼 속에 가시를 품은 듯한 고통은 아니지만, 여전히 힘든 시간이었다. 꽤나 평정심을 갖추어서 이제는 쉽게 동요하지 않는 정신력이 생긴 줄 알았는데, 닥쳐 보니 충돌을 피하는 것과 충돌에 맞서서 버티는 것의 차이일 뿐이었다. 모든 걸 피해 다니며 살 수는 없는 일이다. 불행도 그러하며 고통은 어디든지 도사리고 있다.
음악이나 술이나 그 자체로도 즐겁지만 각각의 차이를 느끼는 것도 즐기는 방법이다. 닮은 것에서도 상이한 부분이 있고 다른 것에서도 비슷한 부분이 있다. 한동안 쉬었다가 다시 보면 새롭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단순히 취미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시작하고 그만두며, 깊게 파고들기도 하고 가볍게 즐기기도 한다. 전문가라고 할 수는 없지만 단순히 즐겁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잘 하면 좋겠지만 못해도 상관없다.
내 생활은 단순하기 그지없다. 일하고 먹고 운동하고 잔다. 주말이면 밀린 집안일을 한다. 주중에 먹을 음식을 미리 만들어 놓는다. 금요일에는 술을 마신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나는 왜 살아 있는가? 지금으로선 관성이라고밖에 할 수가 없다. 십수년 전에 죽고 싶다고 처음 생각했다. 후회할까 싶어서 최소한 십 년은 기다리자고 생각했다. 십 년이 지났지만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습관같은 우울은 크기를 키웠고 불안이 나를 덮쳤다. 거의 그 가장자리까지 갔다. 상담도 받고 정신과에도 갔다. 정신에 대한 내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정신 또한 육체의 일부였다. 생활은 잔잔해졌다. 그러자 좀 더 버틸 생각이 생겼다. 무미건조한 일상은 크게 나쁘지 않다. 기쁘지도 즐겁지도 않으나 괴롭거나 고통스럽지 않다면 견딜 수 있다. 권태감도 열등감도, 상대할 만하다. 공허함은 여전하며 인생의 목적도 의미도 모르겠으나, 그것이 고통을 주지는 않는다. 그냥 태어났으니 사는 것이고, 인생에 의미랄 것은 없다. 수많은 인생 중 하나일 뿐이다.
운이 좋다면 수십년은 살 텐데, 아득하기는 하다. 지금은 단순히 주말만 바라보는 직장인의 자세로 살아가는데, 현실적인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즉 경기가 안좋아지니 구조조정 이야기가 나오는데, 나에게 닥치면 어떻게 할지 방안은 있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은 하는데, 사실은 아무 것도 모르겠다. 뭘 할지, 뭘 할 수 있을지. 일말의 불안감을 가지며 직장에서 그나마 좀 더 발전하려고 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지금이 아니라도 십년 후, 이십년 후에 직장을 잃으면 어떻게 살 것인가?
걱정은 하고 있지만 달리 뭘 하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의욕이 있지는 않다. 그럼 걱정하는 게 의미가 없지 않을까? 사실은 그렇다. 생각만 하고 있으니 걱정을 하든 안 하든 의미가 없다. 그게 문제라고도 생각은 하는데 역시 뭘 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은 뭘 해야 할지를 모르기도 하다. 뭘 해서 어떻게 한다는 청사진도 없고, 동기도 없으니 결국에 걱정이 걱정으로만 끝난다. 해서 지금은 그저 하루하루 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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