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밑줄

주홍글씨 / 나다니엘 호손

Inframince 2023. 3. 27. 03:26

짧은 감상

잘못을 저지르고 그 댓가를 치르는 사람, 잘못을 저질렀으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지내는 사람, 잘못을 용서하지 못하고 복수를 꾀하는 사람이 있다. 마음 깊이 죄의식이나 증오를 감추고 살아가는 목사나 의사를 보면 피로하기 그지없다. 흠 없이 결백하고 순수하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 같은 세상에서 흔들림 없이 살 수는 없다. 인간에게 양심이 있다고 믿는다면 진실의 가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하다고 느낀다면 진이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죄 많은 인간임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용기가 평온함을 가져오지 않은가. 

 

밑줄

그리고 그녀를 정죄한 무쇠 같은 팔에는 멸하는 힘도 받들어 주는 힘도 있는 엄격한 모습의 거인인 법률 자체가 그녀가 말할 수 없는 치욕의 고행을 치르는 동안 그녀를 부축해준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간수 없이 감옥 문을 걸어나오는 순간부터 그녀의 일상 생활이 시작되었으니, 그녀는 자기의 타고난 힘으로 그 생활을 지탱하고 영위하여 나가든가 아니면 그 중압에 눌려 가라앉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원수들을 위하여 기도를 올리지는 않았다. 용서를 베풀고자 하는 염원에도 불구하고 축복의 말이 기어이 뒤틀려 저주로 변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목사는 어떠한 사회 형편에서도 자유 사상을 따르지 못할 사람이었다. 자기를 부축할 신앙의 압력을 항상 몸으로 느끼고, 그 압력이  무쇠 같은 손아귀로 자신을 속박할 때에만 그는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아서 딤즈데일의 경우는 그의 생각과 상상력과 감수성이 하도 강해서 육신의 병의 원인도 그 안에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의술에 능하고 친절하고 다정한 의사 칠링워드는 환자의 가슴속 깊이 파고들려고, 마치 어두운 동굴 속을 더듬어 보물을 찾는 사람처럼 조심스럽게 목사의 사상을 살피고, 기억을 더듬고, 그 밖에 여러 가지를 탐지했다. 이런 것을 탐지할 능력이 있고 기술이 있는 사람이 관찰한다면 숨은 비밀도 놓칠 리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비밀이 있는 환자라면 의사와 접근하는 것을 회피할 것이다. 

딤즈데일 목사가 병든 사람이 늘 그렇듯이 모든 사람을 다 의심하려는 경향만 없었더라면  칠링워드라는 인간의 정체를 좀  더 완전히 파악했을 터이지만, 친구도 안 믿는지라, 설사 적이 나타나도 그것이 적인 줄 몰랐다. 그래서 그는 늙은 의사를 자기 서재에서 맞이하기도 하고, 실험실을 찾아가서 풀이 효능 있는 약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심심풀이로 구경하기도 하며 친근한 교제를 계속했다.

교활한 위선자였으나 뉘우칠 줄 아는 목사는 자신의 참회의 모호함이 폭로될 날이 올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양심의 가책을 사람들 앞에 털어놓음으로써 자신을 속이려 했으나 죄를 한 가지 더 지을 뿐 부끄러움을 금치 못하며, 순간적인 마음의 평화도 누리지 못했다. 그는 진실을 말함으로써 진실을 거짓으로 탈바꿈하게 한 셈이 되었다. 그러나 바탕이 그런지라 그는 소수의 인간들처럼 진실을 사랑하고 거짓을 미워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는 무엇보다도 떳떳하지 못한 자신을 미워했다. 

주홍글씨는 그녀의 사명감의 상징이었다. 그토록 그녀는 남에게 도움을 주었다. 일을 하는 힘도 남을 동정하는 마음도 한없이 크고 너그러워서 사람들은 주홍글씨의 A자를 본래의 뜻대로 풀이하기를 거절했다. 그들은 그 글자가 유능함 (Able)을 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헤스터 프린이 여자치고는 너무나도 강했던 까닭이다. 

가장 대담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외적인 사회의 규칙에 말없이 동화하는 일이 많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한 것이다. 

그애의 천성은 어딘가 잘못되어 그애가 세상에 잘못 태어난 것이 아니냐는 (어머니의 불의의 정욕으로 말미암아) 끊임없는 암시를 받았다. 그래서 헤스터느니 괴로운 마음으로 그 애가 세상에 태어난 일이 잘된 일인가 잘못된 일인가를 되풀이해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정체를 감춘 원수가 친구나 돕는 사람의 탈을 쓰고 항상 곁에 있으면서 기회를 타서 딤즈데일 목사의 허약한 몸과 마음을 농락하고 있었다. 

그래, 정말, 그 자의 생각이 옳았어. 악마가 바로 눈앞에 있었던 거야. 한태는 인정 있는 인간이었던 내가 남모르는 번민으로 인해 악마가 된 거구.

당신에게는, 오직 당신에게만은 좋은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억울함을 당했고, 용서를 베풀 수 있는 자유를 가졌으니까요. 그 유일한 특혜를 저버리렵니까? 한 없이 귀중한 은혜를 거절하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