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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 / 루쉰

Inframince 2020. 9. 6. 10:53

짧은 감상

루쉰의 단편소설집이다. 처음에는 이게 수필인가 소설인가 헷갈렸는데, 이야기 자체가 어떤 명확한 메시지를 품고 있다기보다는 묘사 자체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좀 더 이야기가 이어져야 할 것 같은데 난데없이 끝나버려서 당황스럽다.

여러 편의 단편들에 공통적인 몇 가지의 주제가 있는데, 중국 사회의 비참한 현실이나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 괴로워하는 지식인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런데 오히려 서양 작가들의 작품이 더 이해가 잘 갈 정도로 맥락이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이 많은데, 주석을 보고 배경을 어느정도 알고 나니 조금은 낫다. 그럼에도 인물의 말이나 행동이 이해가 잘 안 된다. 읽으면서 많이 졸았다. 중국 현대사나 사회에 대한 이해가 없는데도 어째선지 스스로 어느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인식을 깨닫고 좀 의아해졌다. 학창시절 주구장창 읽었던 삼국지 때문인가? 

어떤 면에서는 친숙한데, 시대가 1900년대 초반이라 그런지 우리나라 초기 단편소설과 비슷한 분위기가 있다. 또 인물 이름에 알파벳을 붙이는 것도 재미있다. 한국이나 일본에서 소설 등장인물이 A니 B니 알파벳으로 칭해지는 건 알고 있었는데, 당시의 유행 같은 건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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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인생을 즐기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볼 때, 저 여자는 왜 아직도 살려고 저렇게 발버둥 치고 있을까 하며 무척 괴기하게 생각했으리라.

그녀는 자신의 슬픔이 며칠에 걸쳐, 또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곱씹혔다는 사실과, 진작부터 쓰레기 같은 존재가 되어 이제는 싫증과 멸시의 대상으로 바뀌어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본디 북방은 내 고향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남쪽으로 내려온대도 나라는 사람은 고작 또 하나의 나그네에 불과하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지금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어. 그저 그렇게 되는대로 그냥......나는 가끔 이렇게도 생각한다네. 만일 옛 친구가 나를 본다면 아마도 더 이상 친구로 여기지는 않을 것이라고......하여튼 나는 지금 이 모양일세.

자네는 모르지만, 나는 이전보다 사람 만나러 가는 것을 더 두려워하고 있네. 왜냐하면 나는 내 자신부터 귀찮아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네. 내 스스로도 귀찮아하면서 어떻게 남을 찾아가 불쾌하게 할 수 있느냐 말이야.

앞으로 말인가......? 그건 나도 모르지. 자네 어디 한번 생각해 보게. 우리가 옛날에 생각했던 것이 지금 단 한 가지라도 뜻대로 맞아떨어진 게 있나 말이야? 나는 지금 아무것도 예측할 수가 없다네. 내일조차 어떻게 될지 모르지. 아니, 당장 1분 뒤 일조차도......

그러다 문득 정신이 들어 펴보면 벌써 10여 페이지나 읽어 내려갔지만 책의 내용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