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군인 / 포드 매덕스 포드
짧은 감상
20세기 초의 막장드라마. 처음에 이야기를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화자가 시간을 뒤죽박죽해서 이야기하고 있고, 실제로도 화자는 이야기한다.
내가 이야기를 하도 두서없이 해서 이 미로 같은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익숙한 방식이기도 한데, 다만 시간적 배경 덕에 미묘하게 알아듣기 힘든 부분도 있다. 문장이 매끄럽지 않달까 가끔 이게 무슨 말인지 몇 번 반복해서 읽어야 하는 대목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자체는 흥미진진하게 전개되서 단숨에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워낙 이야기가 난해하게 전개되어서 끊어서 읽기가 좀 애매한 듯 싶다. 그런데 또 그렇게 읽고 나서 상쾌한 기분은 아닌 것이, 사랑과 인간에 대해서 회의감을 가질 수 밖에 없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에드워드 애쉬버넘의 바람기에서부터 그걸 지켜보는 레오노라, 허영심에 가득 찬 플로렌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무기력(?)한 화자 존 다우얼까지 비틀린 성격들을 보여준다. 역설적으로 그들은 대외적으로는 '훌륭한 군인과 그의 아내', '병약하고 아름다운 여자와 그의 백만장자 남편'이다.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도 한참 생각하게 된다. 다른 무엇보다도 화자인 존 다우얼의 무미건조함이 인상적이다. 충실한 이야기꾼으로서의 절제인지는 몰라도, 이야기하는 내내 그에게서는 별로 감정이 느껴지지가 않는다. 플로렌스에게 배신당한 이야기를 결국 알아챌 때나, 플로렌스가 자살했을 때, 에드워드가 죽고 낸시가 실성했을 때, 무언가 행동은 있지만 그 뒤의 감정이 잘 읽히지 않는다. 그래서 무기력하고 무감정한 것처럼 느껴진다. 분명히 어떤 행동은 있는데 열정이나 이기심, 사랑 같은 것들이 희미해 보이는 것은 이야기의 중심축인 에드워드, 플로렌스, 레오노라 등의 인물들과 대조되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다시 한번 읽어볼 만하다. 처음 읽을 때는 사실 이야기가 좀 복잡하게 꼬이다 보니 놓친 부분이 좀 있는 듯 싶은데, 당장 다시 읽기는 정신적으로 좀 피곤한 책이라서...언젠가는.
밑줄
45년 동안이나 사람들과 살아 왔으면 인간에 대해 뭔가 알 만도 한데,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왜냐하면 에드워드는 저 바닥까지 떨어져서 돈 한 푼 없이 떠돌다가 길에서 만나는 여자들과 자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제일 좋았을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랬으면 그렇게 많은 해를 끼치지 않았을 것이고, 그 자신 역시 그토록 고통받지 않았을 텐데.
플로렌스는 내게 말하자면 복권의 상품 또는 운동선수의 우승컵, 그의 순결, 건실함, 금욕, 굳은 의지를 보여주는 월계관 같은 존재였다. 아내로서의 본질적 가치로 따지자면 그녀는 내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녀가 아무리 멋지게 차려입어도 나는 흐뭇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이 문제에 대해 나는 아주 회의적인 시각을 갖게 되었다. 말하자면 나는 사람이 누군가를 영원히 사랑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너무 두렵고 외롭기 떄문에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서 우리가 정말 존재할 가치가 있다는 확신을 얻고 싶어 한다.
어떤 남자든 살다 보면 그의 상상력에 봉인을 찍는 여자가 나타나 최후의 봉인을 찍는 순간이 온다. 그 사람은 더는 여행을 떠나거나 배낭을 메지 않을 테고, 그런 장소나 생활에서 영원히 은퇴할 것이다.
내 생각에 세상 사람들이 착실하게 사는 것은 많은 부분 허영심 때문일 것이다.
결혼한 사람들은 누구나 같이 사는 배우자가 자신의 성격이나 과거와 관련해 어떤 약점을 알게 될까 봐 노심초사한다. 자신의 사소한 비열함을 잘 아는 사람과 계속 같이 사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일이기 떄문이다. 그것은 죽음 같은 일이고, 바로 그 때문에 그토록 많은 결혼이 불행하게 끝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 그 누가 다른 사람에 대해 정확한 평가를 할 수 있겠는가? 이 세상 그 누가 다른 사람의 마음 또는 자기 자신의 마음을 정확히 알 수 있겠는가?
내가 이야기를 하도 두서없이 해서 이 미로 같은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주소록에는 7백 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지만, 그녀가 얘기를 나눌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