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두루뭉실

백수생활 1개월차

Inframince 2015. 3. 25. 16:11

사실상 지난 12월부터 백수였지만 2월말까지는 연구실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아무 일도 없이 지낸 건 한달 정도 되었다. 물론 연구실에서 일할 때도 빈둥대기는 했지만 일단 출근이라는 걸 해서 여러모로 느껴지는 바는 다르다. 내일 '해야 할 일'이 없다는 건 매우 새롭다.


본격적으로 구직을 시작한 것은 세달정도지만 벌써 마음은 조급해지고 있다. 그런데 우습게도 그에 비례해서 난 점점 더 게을러진다. 뚜렷한 결과도 확신도 없는 현실을 직시하는 것은 골방 속에서 어둠을 직시하는 것처럼 지루하고 두렵다. 항상 그래왔듯이 나는 겨우겨우 최소한의 일만 하면서 연명해나간다. 


그러고 보면 나의 수동적인 태도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자신감의 상실일 것이다. 나는 왜 자신이 없어졌는가? 우선 시간의 벽을 느꼈고, 그 벽을 뛰어넘고 싶지 않은 게으름과 겁, 그리고 그 게으름과 겁을 극복할 만한 열정, 열정의 이유를 몰랐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든 어떤 좁은 집단에서든 최고였던 적도 없었고 그렇게 자랑스러울 만큼 뛰어난 적도 없었지만 내가 성취한 조그만 것들이 모두 내 노력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했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만만하고 오만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어린 정신의 미숙함은 곧바로 드러났고 빛나는 성취는 부끄러운 기억이 되었다. 그러나 나의 노력만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때도 나는 게을렀으나 무거운 몸을 움직일 만큼의 열정과 동기가 있었다. 물론 어린 시절의 좁은 세계 속이어서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내 주변부터 유명인들까지 지속적으로 열정을 유지하며 성실함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존경받아 마땅하다. 나는 그렇게 되지 못했다.


사실 과거의 내가 지금의 글을 보았다면 나약한 도피와 핑계로 치부할지 모르겠다. 몇 년 동안 고저가 있던 나의 마음에 한 가지 제목을 붙인다면 그것은 불안과 우울이다. 나는 많은 부분에서 달라졌고 그것은 내 머릿 속에서의 혁명이 아닌 급격한 환경의 변화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겉의 습관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이 모순적이다. 여전히 말을 함부로 뱉고 쉽게 단정지으며 반박하고 싶어한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려 하나 이기심을 숨기지 못하고 배타적이며 내 기준에 맞지 않는 것을 외면하려 한다. 그럴 때면 나는 대체 뭐가 달라진 건가 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따금씩 홀로 있을 때 나를 덮치는 감정들은 어린 시절의 나와의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사실 성장이라는 것이 변화가 아닐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몸은 커졌으되 속알맹이는 점점 숫돌에 갈려 바스라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취직이 된다면 아마 당분간은 아무 생각 없이 지낼 것이다. 그러다가 일터에서 더 스트레스를 받고 다시 이 자리로 돌아오던지 아니면 조금 더 일상을 보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미 다른 사람 아닌 내 경험에서 알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내는 시간들은 언젠가는 부메랑처럼 돌아올 지 모른다. 미래에 대한 생각은 고통스럽다. 그렇기에 행동하는 것 역시 힘들다. 억지로 이성을 움직여 보지만 쉽지는 않다. 일단 당장 나를 움직이는 것은 그런 두려움이다. 하지만 거기에 조금의 희망도 섞여 있다고 믿고 싶다.


Thoreau의 말을 빌려서 지금 나의 생활을 스스로 평가하자면 '조용한 자포자기의 삶(Life of quiet desperation)'이다. 어떻게 보면 궁금하기까지 하다. 나는 왜 희망이 없는가? 절망도 불행도 없다. 그리고 희망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