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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밑줄

밥벌이의 지겨움 / 김훈







밥에는 대책이 없다. 한두 끼를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 이것이 밥이다. 이것이 진저리나는 밥이라는 것이다.


이 세계에 사는 일은 굴욕과 수치를 내포하고 있다.


이것은 스포츠의 문제가 아니라 이 사회, 삶 전체의 문제다. 한국팀이 16강을 염원하며 절치부심했던 지난 48년의 세월은 결국 우리가 한국인으로 태어난 운명의 자승자박이었단 말인가. 우리는 우리가 능히 할 수 있는 일을 우리이기 때문에 이루지 못했다는 말인가. 이런저런 연줄에 끈을 대 놓고서 끼리끼리 살려다가 다같이 무너졌다는 말인가.


자연은 자연 그 자체로서 무의미한 것일 수 있다. 자연은 물리적이고 물질적인 세계이며, 인과율의 적용을 받는 객관의 세계이다. 그러나 그 무의미가 인간이 설정한 의미들보다 더욱 힘세게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 


인간의 비행기가 추락해도 까치둥지는 떨어지지 않았다.


인간에 대한 가장 큰 죄악은 인간에 대한 둔감함이라고, 그 역겨운 짬뽕 국물이 나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노동자들의 성취 내용을 송고하면서 늙은 글쟁이는 비통했다. 말로 세상을 바꾸는 일은 이처럼 어려워야 하는가.


포스코 용광로를 바라보면서, 나는 변하는 것보다 변할 수 없는 것들이 인간에게는 더 소중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수차를 돌리는 염부는 염전에서 가장 힘이 좋은 젊은이였다. 염부는 폭양 아래서 하루 종일 맨발로 수차를 돌렸다. 들판 한가운데서 거대한 바퀴를 돌리는 그 염부의 모습은 계단을 하나씩 밟고 태양을 향해 다가서려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가 발판을 하나씩 밟을 때마다 또 다른 발판이 그의 발 앞에 다가오는 것이어서, 하루 종일 발판을 밟는 그 염부는 언제나 제자리였다. 염부는 하루 종일 발판을 밟았으나 언제나 제자리였고, 그 한없는 반복 위로 폭양이 내리쬐었다.


죽음에 삼투되어 있는 삶은 삶이 아니다. 그것은 삶에 미달하는, 어떤 아메바의 무의미한 흐느적거림 같은 것이다.


기왕지사 그렇게 되었으니 뒤돌아보지 말고 가거라.

...

그리고 다시는 생사를 거듭하지 말아라. 인간으로도 축생으로도 다시는 삶을 받지 말아라. 썩어서 空이 되거라. 네가 간 그곳은 어떠냐......누런 해가 돋고 흰 달이 뜨더냐.


희망이나 전망이 없이도 살아야 되는 게 삶이다. 그리고 그게 현실이기도 하다. 희망을 전제하지 않고 어떻게 사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데, 나는 희망 없이도 역사가 가능하다고 본다. 오히려 헛된 희망이 인간을 타락시킨다. 인간은 헛된 희망 때문에 무지몽매해진다. 결정적으로 인간이 무지몽매해지는 것은 어설픈 희망 때문이다.


더러운데 하는 것. 하면서 견디는 것, 그게 좋은 거다. 죽지 않고 산다는 것은 흥정과 타협의 산물이 아니면 안 된다.